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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우천 칼럼] 한국 교육현장의 발자취를 찾아. . .
배명희 2021-02-19 추천 1 댓글 0 조회 927

  

 [심우천 칼럼] 한국 교육현장의 발자취를 찾아. . . 

            고종의 특별조서를 통해 “덕육(德育), 체육(體育), 지육(知育)을 향상시켜 

 

지하철을 이용한 서울 나들이에 나섰다. 유적지들과 곳곳에 파여 해쳐진 발굴터들을 피해 좁은 틈을 비집고 한 자리씩 차지한 마천루들이 즐비하다. 과거와 현재가 함께 공존하는 곳임을 등굣길 정도의 짧은 거리에도 알 수 있었다. 


 덕수궁, 정동(貞洞)길을 앞서 서소문길에 들어섰다. 배재학당(培材學堂) 앞을 지나며 ‘인재를 키운다’는 뜻을 담은 배재(培栽)의 교패를 마음에 담았다. 정동교회를 세운 감리교 선교사 아펜젤러가 1885년 대한제국의 지원을 받아 세운 한국 최초의 근대식 교육기관이다. 그 이듬 해에 인근에 세워진 이화학당이 민족의 여성지도자들을 양성하였다면 배재학당은 독립협회와 더불어 민족의 신진세력을 양성할 목적으로 고종이 적극적으로 지원하였다. 


 우리나라의 본격적인 근대교육은 1894년 갑오개혁을 단행하면서 시작되었다. 신분제도와 과거제도의 폐지, 그리고 인재양성을 위한 신교육의 이념을 담고 1895년에 ‘소학교령’이 제정 반포되었다. 고종의 특별조서를 통해 “덕육(德育), 체육(體育), 지육(知育)을 향상시켜 국가 중흥의 강력한 인재를 양성한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덕이 재주보다 많은 사람을 군자라 하고 재주가 덕보다 많은 사람을 소인이라고 치부해 버린 유교문화의 정신이 그대로 반영된 탓일 것이다,


 1910년 일제의 국권찬탈 후의 우민화 정책은 ‘보통학교령’을 발표하며 소학교 5년제를 4년제로 바꾸었다. 일본학생들과는 달리 상급학교 진학이 어렵도록 제도를 정비한 일본인들의 꼼수이다. 특별히 일제는 사립학교와 서당 등 우리민족의 자생한 교육기관을 억압하였다. 메이지유신을 통하여 급하게 받아들인 일본식 근대화에 필요한 노동력 확보를 위해 초급 실업교육이 그대로 강화되었다. 아울러 교과과정에서는 조선어를 사실상 폐지하여 일본어를 확충하는 황민화 교육을 실시하였다.


 해방과 더불어 문맹률이 78%에 달한 대한민국은 미군정의 영향으로 미국식교육제도를 받아들이고 교육의 기회균등이 보장되도록 노력했다. 초등학교 의무교육은 6·25 동란의 피난 중에도 천막학교와 노천학교를 통해 좀처럼 식지 않았다. 지속적인 학생 증가로 중학교 입시가 과열되었다. 중학교 무시험제도를 거쳐 1974년에는 ‘고교평준화정책’을 추진하여 교육의 과열을 해소하려고 했으나 경제성장과 함께한 한국인의 교육열은 한국사회의 지나친 교육팽창을 초래했다.


경기고, 서울고와 같은 서울의 명문고등학교는 서울대학에 입학하는 등용문의 산실이 되었다. 가정과목 시험에 보리의 싹을 틔운 엿기름으로 엿을 만든다는 상식을 되집고 무즙으로 엿을 만들 수 있다고 우겨대며 솥단지를 걸고 증명했던 시대이다. 그 이후에도 사교육 전면 금지와 해제, 학교 내 보충수업 실시 여부 등을 반복하며 현재까지도 끝없는 진통의 현장 속에 있다.


 현 정부가 들어서자 자립형 사립고 재지정을 두고 많은 사립학교들이 교육청과 정부를 상대로 법정다툼을 하고 있다. 억지로 기준을 높여가며 백년의 세월을 넘어 국가의 발전과 인재를 길러 낸 사교육 기관의 공적을 무시한 채 한순간 정치꾼들의 이념 몰이로 희생을 강요하고 있다. 교육전문가들에게 맡겨야 할 교육현장이 정치판처럼 야단법석이다. 복잡하게 얽힌 실타래처럼 꼬여버린 교육의 문제를 쾌도난마처럼 단 칼에 해결할 방법은 없다. 유기적으로 결부된 복잡한 구조의 사회적 문제를 정치적인 문제로 해결하려고 한다. 


과거에는 가난과 무지와 무능을 상대로 싸웠다면 이제는 여당의 하수인이 되어버린 교육청과 무소불위 권력을 남발하는 정부와 내로남불의 이념으로 똘똘 뭉친 여당을 상대로 싸우고 있는 꼴이다. 참 교육자들은 정치 이념에는 관심이 없다. 다만 일찍이 제나라 재상 관중이 부르짖었던 것 처럼 백년을 내다보고 종신토록 심고 또 심어야 할 것이 인재임을 알고 열심히 사람을 심는 일에만 열중하였다. 


약보다는 밥상이 우리의 건강을 지켜주는 법이다. 다양한 형태의 먹거리를 자신의 입맛과 형편과 기질에 따라 먹을 수 있도록 먹거리를 제공하는 것이 어른들의 몫이다. 공익적인 부분을 무시할 수 없다면 공교육만으로 충분하다. 저마다의 철학과 정신으로 세워진 사학들은 우리 사회를 건강하게 지켜주는 또 다른 기능과 역할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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