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근찬 칼럼] 지금 시급한 것은 改憲(개헌)이 아니라 政治兩極化 (정치 양극화) 해소를 위한 妥協(타협)과 對話(대화)의 復元(복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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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는 12.3 비상계엄 사태의 책임을 물어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 소추안을 의결했다. 이제는 헌법재판소의 시간이다. 향후 심판 절차를 통해 비상계엄의 위헌, 위법성과 내란죄 여부를 따질 예정이다. 현재 헌법재판소에서는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 심의가 진행 중이다.
지난 10일 국민의힘 권성동 원내대표는 교섭단체 대표 연설을 통해 우리가 겪고 있는 정치 위기의 근본 해결책은 개헌이라고 주장했다. 이러한 개헌 논의는 탄핵 결과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데도 여당 원내대표가 개헌론에 불을 지피다니 놀라울 뿐이다. 지금의 개헌 논의는 대통령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탄핵 결정을 전제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통령 탄핵 비극은 2004년 노무현 대통령, 2016년 박근혜 대통령에 이어 벌써 세 번째다.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자존심을 무너뜨린 부끄럽고 참담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민주화 운동의 역사적 산물인 1987년 헌정 체제의 대수술이 불가피하다는 점은 인정한다. 현행 헌법에 따르면 단 한 번, 5년 임기만 가능한 대통령 직선제의 승자는 권력을 독점해 帝王的(제왕적) 대통령으로 군림한다. 반면 대선 패자는 임기 내내 다음 대선을 노리며 대통령과 정부에 대한 足止(족집게) 전략을 구사한다. 협치가 원칙적으로 불가능한 정치 체제다.
윤 대통령은 인사권과 의료 정책 등을 독단적으로 추진했고, 국회의 압도적 다수당인 민주당은 입법권을 남용해 사법과 행정권의 무력화를 시도했다. 헌정사상 최초로 감사원장을 비롯해 장관급 인사에 이어 평판사, 평검사까지 탄핵으로 몰아넣었다. 대통령 또한 법률안 재의 요구권, 거부권을 헌정사상 최다 행사했으니, 국정은 거의 식물 상태에 이르렀다.
이러다 보니 탄핵 절차와 헌법 개정은 최대한 동시에 진행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늘어났다. 탄핵의 목적인 민주주의 회복을 위해서는 개헌이 시급하다는 것이다. 지금의 정치 구조로는 누가 대통령이 돼도 협치는 불가능하기에 비극은 반복될 거라는 주장도 있다. 이제 37년이 지나 수명을 다한 1987년 정치 체제의 대수술이 불가피하다는 주장에는 일리가 없지 않다. 일각에서는 정치 복원을 위해 ‘1987년 체제’의 수술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전직 국회의원들의 모임인 대한민국 헌정회는 가장 왕성하게 개헌을 주장하고 있다. 헌정회는 지난해 12월 31일 대통령 탄핵 정국의 근본적 원인이 제왕적 대통령과 단원제 국회의 충돌을 조정하는 제도적 장치가 헌법상 全無(전무)하기 때문이라고 진단하며 분권형 개헌을 해결책으로 제시했다.
헌정회는 탄핵 심판 동안 주어진 짧은 시간을 활용해 ‘선 개헌, 후 정치’ 일정을 제안했다. 그러나 현행 헌법이 허점이 없지 않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지금 이 시점에서 개헌부터 하자는 주장은 현실적으로 수긍하기 쉽지 않다. 개헌은 단시간에 급조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이해 당사자들의 반발도 예상되고, 자칫하면 ‘개헌’이 아니라 ‘개악’이 될 수도 있다.
한 예로 남미 칠레의 경우, 2019년 말 대규모 폭동 후 국민의 요구로 서둘러 개헌안을 내놨으나 졸속으로 만들어진 개헌안은 국민투표에서 압도적으로 부결됐다. 그 결과 칠레는 아직도 독재자 아우구스토 피노체트가 만든 헌법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문제의 一端(일단)이 제왕적 대통령이라는 진단도 수긍하기 어렵다.
우리나라의 경우, 현행 헌법 아래서 현직 대통령 세 명이 탄핵당했는데 대통령직이 제왕적이라는 것이 과연 타당한가? 최소한 헌법의 문제가 아니라 정치 문화와 제도의 문제라고 본다.
우리만큼 대통령 彈劾(탄핵)이 잦은 남미의 경우를 보더라도, 제왕적이라고 보이는 대통령은 사실은 허약한 대통령이었다. 의회의 반대로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대통령이 마지막 수단으로 행정명령을 통해 의회를 우회하려 했기 때문에 그렇게 보였을 뿐이다. 우리도 크게 다르지 않다.
사사건건 制動(제동)을 거는 거대 야당 중심의 국회에 지친 대통령이 ‘어처구니없게’도 비상계엄을 발동해 제풀에 나가떨어진 게 지금의 상황이다. 지금 시급한 것은 개헌이 아니라 정치의 근본 수단인 대화의 복원이라고 본다.
흔히 政治(정치)는 가능한 것의 藝術(예술)이라고 한다. 對話(대화)와 妥協(타협)을 전제로 하는 것을 뜻하는 말이다. 이걸 포기하고 정치를 다른 수단으로 하려 한 결과가 지금의 상황이다.
입법부를 장악한 거대 야당은 多數決(다수결)을 빙자해 탄핵이라는 수단으로 행정부와 사법부를 부단히 압박했다. 행정부도 여론과 分掌政府(분점 정부)의 현실을 부정하고 거부권 행사로만 일관했다. 이런 상황에서 제왕적 대통령을 교체한다는 명분으로 국회의 권한을 강화한다면 문제를 더 악화시킬 뿐이다. 그런 감시자들을 누가 監視(감시)할 것인가?
모든 것에 앞서 정치 본연의 수단인 대화와 타협을 회복하는 것이 개헌보다 급선무다. 그것 없이는 百藥(백약)이 無效(무효)라는 점을 알아야 한다. 與·野·政(여·야·정) 협의체가 가동됐더라면 미래 권력 제도 설계에 새로운 모범을 제시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제 여·야·정이 각기 주제를 공론에 올려 허심탄회한 대화를 통해 결론을 도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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