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신원식 의원, “워싱턴선언은 제2의 ‘한미상호방위조약’이다” |
워싱턴선언이 갖는 첫 번째 의미는 미국이 타국과 핵공유체제를 구축한 것은 1966년 NATO가 첫 번째이고 이번에 우리와의 핵공유가 두 번째라는 점에 주목 |
‘한미동맹 70년’은 「결정적인 도전과 위대한 응전」의 역사를 거치면서 세계 최강의 모범 동맹으로 진화했다.
첫 번째 결정적 도전은 북한 괴뢰집단이 중‧소의 사주와 지원을 받아 일으킨 6.25전쟁이었다. 한미가 UN의 깃발아래 함께 피흘리며 3년간 응전한 결과 ‘한미상호방위조약’이 탄생했다. 두 번째 결정적 도전은 북핵 고도화와 신냉전이란 지금의 복합위기다. 그 응전이 바로 워싱턴선언이다.
6.25전쟁의 참담한 아픔을 딛고 탄생한 한미상호방위조약이 오늘날 대한민국을 만드는 원동력이 됐음을 부정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워싱턴선언은 6.25전쟁과 같은 피를 흘리지 않고도 대한민국이 재도약할 수 있는 발판이 될 것이다. 워싱턴선언은 제2의 한미상호방위조약이라고 해도 결코 지나치지 않다.
워싱턴선언에 따르면 핵 관련 논의에 특화돤 ’핵협의그룹(NCG)‘가 신설된다. 전략자산의 한반도 전개가 정례화되며 이를 통해 북핵 억지력이 대폭 강화된다. 북핵 위협을 억제하고 방어하기 위한 한미의 연합 훈련과 시뮬레이션이 핵위기상황을 상정한 훈련이 가미된다.
워싱턴선언이 갖는 첫 번째 의미는 미국이 타국과 핵공유체제를 구축한 것은 1966년 NATO가 첫 번째이고 이번에 우리와의 핵공유가 두 번째라는 점이다. 특히 1968년 NPT체제 출범이후 미국이 확장억제 관련 정책적 선언과 공약을 한 적은 있었지만, 별도의 문서로 구체화한 것은 워싱턴선언이 처음이다.
두 번째는 30여개 국가로 이루어진 NATO 핵공유체제와는 달리, 워싱턴선언은 한미 양자간 핵공유체계라는 점이다. 그래서 NATO의 핵공유체제에 비해 훨씬 심층적인 협의와 신속한 의사결정이 이루어질 수 있다.
세 번째는 구 냉전시대 미국의 주적은 소련이었기 때문에 미국 대외정책의 최우선 노력은 유럽에 집중되었다. 신냉전은 미중 간의 패권경쟁이고 그 주무대는 한반도와 동북아다. 이에 더해 북핵 위협은 미국의 전략적 인내의 임계점을 넘은지 오래다. 대한민국의 전략적 가치가 구냉전시대의 서독·프랑스 등 서유럽 전체에 맞먹는 수준으로 높아졌음을 미국이 인정한 것이다.
네 번째는 워싱턴선언 이전의 한미는 재래식 전력만 공유하는 동맹이었지만, 워싱턴선언 이후의 한미는 핵을 위시한 미국이 가진 모든 고가치 확장억제 수단을 공유하는 최강의 동맹이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NCG(핵협의그룹)의 역할과 의미에 주목한다. NCG는 핵운용을 위한 한미간 정보공유와 협의에 특화된 상설협의체다. 정례 협의는 분기 1회 정도, 주요 사안 발생시 수시로 개최될 것으로 예상된다. 외교 및 국방당국 뿐 만 아니라 한국 대통령실과 미국 백악관, 그리고 양국 정보기관까지 참여할 가능성이 높다. NCG는 한미핵공유체계의 완결판이 아닌 본격 출발점이다. 앞으로 양국은 긴밀한 협의를 통해 운용될 핵전력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어떻게 운용할 것인지, 훈련은 어떻게 할 것인지 등을 구체화해 나갈 것으로 전망된다.
‘워싱턴선언’은 ‘미국이 자국의 안전을 위해 동맹을 희생시키지 않겠다는 확실한 메시지’다. 이제 김정은이 핵으로 한미동맹을 이간하려는 시도는 부질없게 됐다. 중국이 북핵을 옹호해서 얻는 것보다 한미 핵공유체계 출범으로 잃는 게 훨씬 많게 됐다. 북‧중이 워싱턴선언으로 북핵에 관한 전략적 셈법이 완전히 바뀌었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北 비핵화와 진정한 한반도 평화의 서막이 열릴 것이다.
결국 ‘워싱턴선언’은 北 핵사용을 억제할 뿐만 아니라 北 비핵화까지 견인할 수 있는 강력한 방패이자 칼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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